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알게 모르게 법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의 일상에 법이 깊게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법치주의의 관점이나 절차적 정당성을 놓고 봤을 때는 더 성숙하고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점도 발견하게 된다. 벨기에 출신의 라울 베네갬(Raoul Vaneigem, 1934∼)은 노작 <일상생활의 혁명>에서 삶의 일상적 영원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만큼 일상은 이제 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지속적인 삶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법이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도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사람들에게 때로 법은 희망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법은 복지의 전제가 될 수 있고, 안녕한 물음의 대답이 될 수도 있다.

법이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서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하나로 문화적 수용의 용이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가령, 2011년 영화 <도가니>(황동혁 감독), 2012년 영화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 그리고 2013년 영화 <변호인>(양우석 감독)은 법이 사회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많은 사람들에 일깨워주는데 한 몫을 했다. 물론, 법이나 법정을 소재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2013년 여름에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같은)와 소설도 왠지 멀기만 할 것 같은 모습의 법을 -일단 그 주제는 차치하고- 다룸으로써 법이 아주 가까이에서 머물고 있다는 실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법이 가까이에 있다고 쉬운 것만은 아니다. 서울고등법원은 대낮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원에서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어린이의 손등에 뽀뽀를 한(2013년 5월에 벌어진 일이었다.) 68세의 할아버지에게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의 혐의로 벌금 1500만원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귀여워서 그랬다는 할아버지의 주장을 받아들여 친근감 표시 이외의 추행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로 판결했으니 두 법원 사이의 판결이 서로 다른 셈인데 법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 사회통념을 해석하는 데에도 차이가 난다.

법은 필요하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어떤 법이어야 하는가이다. 사람들을 더 편안하게 해주고, 공동의 이익에 더해 개인의 이익까지 함께 보장해주는 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설령 잊힌 권리라 해도 법이 그것을 되찾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끔 하는 법이란 과연 가능할까?

인간은 법의 울타리 속에 놓여 있는 존재이다. 법은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기도 하고,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법을 적용하는 이들에게나, 또는 법을 적용받는 이들에게나 법은 똑같이 그들 손에 쥐어진 방패이자 무기이다. 비록 사소한 일상의 일지라도 법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며,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에게도 법의 영향력이 미치는 경우도 있다.

비록 매 순간 느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수많은 법규범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법규범은 인간의 모든 일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다면 대부분은 서점에서 매매계약에 의해 구입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 책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 된다. 또한 길을 건널 때도, 차를 타고 갈 때에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에 적용되는 법규범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서 실정의 법규범뿐만 아니라 종교나 관습, 도덕 등 각종 생활규범이나 사회규범에 의하여 규제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생활관계가 복잡해지고, 사회가 발달하여 법률제도가 완비되어감에 따라 법률관계의 범위는 점차 증가하였고, 오늘날 인간의 일상 생활관계는 거의 법률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사회에서 태어나 사회에서 생활하다 사회에서 생을 마치는데, 그 과정 속에서 구체적인 법률관계가 등장한다. 가령, 자연인인 성춘향은 어느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하고,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고 생활하다가 고향의 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열심히 주민을 위해 활동하다가 사망하였다고 하자. 여기에 어떤 법률관계가 기본적으로 있을 수 있는가. 먼저, 성춘향은 태어남에 따라 부모 형제들 간에 신분법적 관계가 발생하고, 대학생활을 위해 원룸을 얻었다고 하면 민법상의 임대차계약관계가 성립하게 되고, 학교를 오가기 위해 버스를 타면 상법상 운송계약관계가 성립되고, 취직을 하게 되면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또한, 결혼을 하게 되면 민법상 혼인관계가 발생하고, 아이를 낳으면 다시 신분법적 관계가 발생하고, 시의원에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선거법이 적용되며, 시의원으로 당선되면 여러 가지 특권이 인정될 수 있지만, 사망하게 되면 권리와 의무도 없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은 대부분 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물론 법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범주로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제사회에서도 법이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20세기에 들어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이상은 행정의 범위를 더욱 넓혔고 이에 따라 법의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또한,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여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예컨대 인권, 환경, 노동 등과 관련한 문제들이 발생하여 법 이외의 문제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법적 문제가 되고, 법적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법은 가깝고도 먼 인간의 동반자이다. 인간은 늘 법보다 우선이지만, 법이 인간을 규정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미 만들어진 법은 설사 그것이 관습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할지라도 인간을 근거 지운다. 물론 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향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뜻 법은 강 건너 인간을 바라보듯 조심스레 그 행동을 관찰한다. 그리고 설정된 경계를 벗어난 인간에게는 가차 없이 스스로 벼린 무기를 꺼내든다. 그런데 법은 누가, 왜 만드는 것일까? 이렇게 문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다. 사람이 서로 받쳐 주고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리지어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공동생활을 꾸려가기 위하여 사람들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결합하여 형성하는 집단을 사회라 고 한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거나,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에 있다", "인간의 존재는 타인과의 공존에 있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한다. 어떻든 사회의 실체는 타인을 통한 생활과 타인을 위한 생활의 종합이며, 상호의존적인 공동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공동생활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설계하며 더 나은 생활을 꿈꾸기 마련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그래서 보장되고 존중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 속 에서 각자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달성하려고 한다. 더구나 한 인간이 스스로 정당하게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다른 사람에게는 부당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만일, 각자가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한다면 거기에는 필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가 출현해 혼란과 공포에 둘러싸인 '야성의 왕국'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사회생활이 유지될 수 없게 된다.

법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각자의 바람과 이익에 따라 이 질문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또 답을 제시한다. 오래전부터 많은 학자들 이 다양한 법의 개념을 제시했지만 그 누구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지금도 법조인들에게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다. 법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실로 중요한 문제이다. 법은 무엇보다 인간사회의 현실을 상정한다. 그만큼 법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 쓰이고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사회에 끼치는 향이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을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사회규범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설정된 법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사회규범과도 연계된다. 이렇다 보니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즉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 대한 깊고 뚜렷한 통찰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게다가 인간의 행위란 때로는 예측이 어렵기까지 하다. 따라서 사람들 스스로가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도록 하는 기준을 요구하여 마련된 관습이나 도덕, 종교적 규율 같은 규범들과 더불어 법을 정의하려는 시도도 등장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 실정의 법규범뿐만 아니라 종교나 관습, 도 덕, 예의 등 각종 생활규범이나 사회규범에 의하여 규제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생활관계가 복잡해지고, 사회가 발달하여 법률제도가 완비되어감에 따라 법률관계의 범위는 점차 증가하고, 오늘날 인간의 일상 생활관계는 거의 법률관계로 이루어 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화함에 따라 부정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현상이 덩달아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진지하고 세심히 살펴 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공동의 선’에 의한 올바른 법규범의 정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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